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여행

9 04 2010

“모든 정직한 사람은 다 예언자이다. 그는 개인적인 일에서나 공적인 일에서나 자기의견을 서슴없이 말한다.” (William Blake – 산업혁명기 영국시인)

나는 나이 서른 앞에 서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문화예술에 항상 관심이 넘치던 나에겐 때로는 광고인 이란 직업이 유치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광고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재는 척도이기도 하다. 문화를 더 가깝게 관찰하고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속에서, 위로와 재미를 확인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1.5세대 교포로서, 완전한 한국인도 브라질인도 아닌, 희미하고 혼란스러운 문화정체성 안에서 지난 이십 이 년 동안 헤매오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에 대해서 포어나 영어보다 매우 뒤떨어지는 한국어 수준으로 글을 쓴다는 건 완벽주의자인 내 성격에 불만스러운 일이지만, 말이든 행동이든 삶이든 진실하다면, 꾸미지 않더라도 아름답다고 믿는다. 그래서 십 오 년 만에 방문을 통해 내가 맛볼 수 있었던 모국에 대한 느낌을 솔직하게 적어보려 한다.

올해 내 나이는 서른이다. 어디선가 읽었글이 있다. ‘서른은 단순한 나이라기보다는 한 강을 건너는 다리’ 라고. 런던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하도 다리를 매일같이 건너 다녀서 그런지, 나는 그에 기능적인, 은유적인, 상징적인 모든 의미를 아주 즐긴다. 그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땐 아직 젊음의 불꽃이 남아 있기에, 있는 힘을 다해 생을 한번 뒤집어볼 수 있는, 인생을 도박할 수 있는 나이기에 더더욱 관심이 끌린다.

서른을 맞이한다는 건 나에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세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반영에서 활동적인 결정으로 지난 2009년 11월말 일주일 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매해 휴가 때만 되면 어디로 갈까 라는 생각의 열정이 나를 배수했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인인 내가 모국을 방문 할 생각 조차 하지 않고 지냈던 건, 그 어느 핑계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관심이 없었고 한국은 전혀 내가 호감을 갖고 있던 우선권 목적지명부와는 아주 거리가 먼 나라였기에.

그렇게 무관심한 태도를 갖고 있었으니, 나는 한미연이라는 조직은 물론이고, 세계한민족 공동체재단의 존재 조차 모르고 지내왔었다. 지난 9월 한미연 브라질 지부 회장 고수정씨를 통해, 김덕룡 총재님께서 잉태하신 세계한민족 차세대리더 대회에 참가 추천을 받았을 때만큼만 해도, 나는 어떤 의미와 기대를 트렁크 안에 넣고 여행을 떠나야 할지 확실치 않았다. 차세대 리더 라는 호칭은 지나친 거창함으로 느껴졌지만, 솔직히 나는 화려한 기대조차 하지 않고, 중학생일 때 한글학교와 함께했던 싱겁게 기억되는 모국연수 정도의 여행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체크인을 했다.

프랑스를 걸쳐 파리에 살고 있는 친구와 저녁식사를 한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긴 시간을 여행했다. 그리고 한 겨울 아침 추운 만큼 낯선 고향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다. 고향이란 단어를 해석할 땐 나의 사전에서만 친근하고 반가운 뜻보단 어색하고 낯설다라는 사실을 의식했을 땐 쌀쌀한 칼 바람이 내 마음을 핧키고 지나갔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곳엔 겉은 무심하더라도 속은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손을 아주 반갑고 따뜻하게 잡아주며 내 마음을 녹여주었다

그 다음날들은 나에게 게을렀던 민족정신이 버쩍 서게 한 자극을 받게 한 날들이었다. 국회의 사당, 경복궁, 국립 중앙 박물관, 전쟁 기념관, 백제 유적지, 한울림 사물놀이 부여교육원, 새만금 개발사업, 전주 한옥마을, 포스코 포항제철,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판문점 등등,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아주 푸짐하고 담백한 프로그램 이였다. 훌륭한 국회의원, 사학자, 시인, 경제학자, 예술가 들과 한 밥상 앞에서 고향의 맛을 같이 나눈 자리에서 그분들은 나에게 여러 각도를 조명하여 한국을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시켜주셨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곳에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

‘애국심’, ‘민족정신’ 또는 ‘한인정체성’ 이란 단어들, 브라질에서 1.5세대로 살면서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주제들이 새삼스레 크게 다가왔다. 오히려 솔직히 털어놓자 하면 1.5 세대로서 한국과 브라질의 문화와 사고의 조합은 항상 어색하고 소화시키기에 부담스러웠다. 그런 과정에서 애국심을 찾아 외친 다는 건 나의 체질이나 치수에 맞지 않는 고지식한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다양하고 개방적으로 느껴지던 서양현대문화에 관심을 더 가졌고 그런 관심을 키워주고 가꿔주는 환경에서 자랐다.

하나의 색깔만이 강요되던 사회와 시대에서 자라신 어머니는, 나에게 다양한 색의 삶을 현상시켜 주시기 위해, 신선하고 나를 교육하시는데 있어서 맑은 정신을 아낌없이 입력해 주셨다. 음식은 가림 없이 먹고, 사람은 많이 상대하고, 책은 골고루 읽고, 음악은 듣기보다 감상하고, 새로운 문화는 항상 받아드리며 이해 하라는 사고를 조각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여행은 무조건 투자’ 라는 생각을 물려받고, 이십 대에 직장인의 나이만큼 어리석은 월급을 부지런하게 모아, 일년에 한두 번씩은 생소한 곳을 찾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나는 그 동안 내가 비교적 매우 글로벌 하다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여권에 찍힌 도장들만큼 가벼운 무늬로만 세계적이었을 뿐이었다. 이유는 바로 본인의 깊은 정체뿌리를 인식하지 못한 자는 그 어느 문화도 가장할 수 없다는 따끔한 사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인해 난 조금씩 변해졌다고 믿는다. 너무 앞으로만 달려온 내 자신을 다시 바라보며 반성하였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한인교포사회를 나는 언제나 불편하다고 감지하였다. 한국인들의 천박한 몸짓과 시끄러움, 비만한 내용에 넘치는 거품이 피곤했다. 여유로운 경제적인 수준 균형에 맞지 않는 단순한 문학, 교육, 지식 수준들과 또한 자주 부끄럽고 짜증스럽게 부족했던 기본 사회성매너 나 에티켓…… 그래서 한때는 한국인인 정체성도 거부하고 그와 담을 쌓고 살았던 어리석고 건방진 때도 있었다.

그런 태도를 지금 분석해보면, 촌스럽게 느껴지던 동양적인 부분을 피하고, 서양 고 품격 문화를 따라가느라 안간힘을 썼던 몸부림 자체가, 서양문물에 대한 콤플렉스의 표현이며, 아직 문화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증거인 것 같다. 그럼으로 우리의 문화에 대해 살인행위에 가까운 무책임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브라질과 한국은 지구반대편 이억 만리의 거리로 떨어져있지만, 난 그보다 더 먼 거리를 다녀온 느낌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 들었다. 여러 곳을 다녀왔었지만 이번 한국방문은 틀림없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귀중한 최고의 여행이었을 것이다. 나를 깊이 감동시키고 생각과 마음에 움직임을 주었기에…… 어느새 그 익숙치 않던 고향은 내 마음의 꽃을 피우게 하는 곳이었다. 그 곳은 숭늉보다 구수하고 막걸리 한 사발보다 더 찰찰 흐르는 어머니의 손길을 나에게 진하게 맛 보여주었다. 모국은 그런 곳이었다.

1.5 세대 한국인 그리고 이민자로서 이국 호흡을 부드러운 리듬으로 맞출 수 있는 하나가 되는 정신과 마음의 태도를 그려본다. 내가 다시 한번 알게 된 모국과 나의 정체성을 더 자연스럽게 내 삶 안에서 표현하고 싶다. 거창한 욕심이지만, 나의 정체성에대한 투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식인으로 크고 싶다. 이것은 단지 나의 욕심뿐이 아닌 우리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한국적인 철학, 지혜, 문학예술 그리고 의식주의 생활문화에 깊고 높은 안목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느끼게 해준 행운 앞에서 나는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박혜진: 1980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브라질로 이민을 왔으며, ESPM 대학교 광고마케팅 전공을 하고, 영국런던에서 삼 년 동안 생활을 하며 CENTRAL SAINT MARTINS 대학원 디자인 석사를 마치고, 현재 MCCANN ERICKSON 광고 에이전시에서 전략계획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기에, 얼마 전부터 인터넷 블록 (dejavudejavecu.wordpress.com) 으로 통해 한국현대문화를 브라질인들 에게 널리 알리고도 있다. 한미연 회장 고수정 변호사 추천으로 2009년 제7차 세계한민족 차세대리더대회에 브라질 대표로 참가 하였으며, 브라질 한인회의 복지 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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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hos de Menina

8 01 2010

So Young Kim (41) nasceu em Pusan, Coréia do Sul e imigrou para os EUA aos 12 anos de idade. Estudou na Art Institute of Chicago, onde conheceu Bradley Rust Gray (38), com quem há 10 anos é casada na vida e na profissão. Eles moram no Brooklyn, NY, e são apontados como um dos maiores talentos de filmmakers independentes de sua geração.

O mais recente filme de So Young Kim estreou hoje no Reino Unido, Treeless Mountain. Ele contém elementos autobiográficos, baseado nas turvas memórias da infância da diretora e foi filmado na sua cidade natal.

Foi um espirro de poesia no meu dia. Deu-me vontade de abraçar a Jin, a personagem principal de 6 anos e, sem dizer uma única palavra, ficar segurando-a, até ela sentir os meus braços dizerem: ‘vai ficar tudo bem’.

São duas irmãs, Jin (6) e Bin (4). Depois de ter sido abandonada pelo marido, a mãe também as abandona, deixando-as com uma tia alcoólatra. Ao despedir-se, a mãe diz para que depositem moedas num cofre de porquinho. Pois quando ele estivesse cheio, promete que ela estaria de volta.

A história é contada a partir da ótica das meninas, texturizando o filme com ingênua delicadeza. A mãe não vai voltar e, elas também não têm dinheiro para engordar o porquinho. Elas sentem fome e saudade. Então engolem e vendem gafanhotos para conseguir moedas.

Nunca engoli gafanhotos, mas sapos, eu posso dizer que já engoli muitos. Desejos e vontades caladas que, por tantas vezes desconfortaram o meu estômago com frustrações ácidas e silenciosas. Mas Treeless Mountain te comove ao sugerir, inocentemente, uma visão poética das situações mais desesperançosas.

As meninas, e o porquinho, engolem doses de esperanças que nutrem a nossa crença (tão ingênua quanto necessária) por dias mais alegres, em que as promessas que nos foram feitas serão cumpridas.

Não há árvores na montanha de Jin e Bin, elas não têm aonde se encostar. Mas é a crença que dá sentido aos seus atos, como o de plantar galhos em morros de entulho.

Leia aqui a entrevista de So Young Kim na Dazed & Confused. E para os que compreendem coreano (não há legendas) a versão original do trailer é de cortar os pulsos.





2010

6 01 2010

Já há um tempo que gostaria de ter publicado este post, mas como grande parte das coisas que passam pela minha vida, foi postergada por preguiça e falta de organização. Para a minha sorte, desta vez não me parece que perdi o timing. Muito pelo contrário, não poderia haver pensamento melhor moldado para este momento.

2010 é o ano do Tigre, o terceiro dos 12 signos chineses. Na numerologia este é também o ano 3 (2+0+1+0=3). Sendo o 3 um número pelo qual os coreanos têm extrema obsessão. Eles gostam muito do 4 também, mas com este a relação é diferente, e que merece um post à parte – talvez, junto com o mais perfeito dos números, o 7 (3+4) e o completo da mesa, o 12 (3×4).

Tudo o que é importante e significativo naquele lugar funciona à base de três. Nas aulas de Kisaeng, a versão coreana das gueixas, aprendi que os chás não devem servidos de uma só vez, mas sim em 3 parcelas suavemente precisas. Na arquitetura, todos os palácios são vestidos por 3 portais, que preservam às dependências da realeza. São pedra, papel e tesoura no jankempô. Nos rituais mais solenes são 3 as respeitosas reverências que devem ser demonstradas – para os próximos, para a autoridade e para a divindade.

O número 3 é mágico no seu significado espiritual – ele é sólido, substancial e inteiro. São Pai, Filho e Espírito Santo. A integridade do tempo está no passado, presente e futuro. Três linhas que fecham uma figura e três planos que delimitam um sólido. Com três dimensões vivemos numa realidade física. E quando a mágica acontece, sempre faço 3 pedidos.

Para escrever sobre ele neguei por 3 vezes entre 7 e 24 de Dezembro, mas o número cresceu ainda mais em 2010. Pulei mais 7 novas esperanças e, nas idas e vindas do mar, daquelas ondas que lavaram a minha alma, ouvi um pouco de sabedoria para melhor negociar 3 coisas: o que a gente quer, o que a gente deve e o que a gente pode. Que venha o novo. Feliz 2010.





Platoon Kunsthalle Seoul

7 12 2009

Platoon Kunsthalle é um espaço de cultura alternativa, aberto em Seoul em abril de 2009. Desde que soube da inauguração deste espaço, tenho indicado a todos os amigos residentes na Coréia a fazerem uma visita.  Sobram elogios.

A sede desta iniciativa, o Platoon, fica em Berlim, desde 2000. Não consigo encontrar uma palavra que o defina melhor além de ‘espaço’. A atmosfera de lá é uma mistura de Brick Lane (Londres) e Liste (Basel). Não é uma galeria, nem um centro cultural; não é um bar, restaurante ou balada; nem teatro ou auditório – é tudo isso junto e mais um pouco.

Simpatizo-me muito por este lugar por ele ser contemporâneo no seu conceito e formato. É um espaço multimídia de manifestação e exposição da cultura underground, através de workshops, discussões, exposições, noites de exibições de filmes ou performances. Para os talentos emergentes, há programas residência também.

As disciplinas abordadas variam de street art, design gráfico, moda, vídeo arte, música, ativismo político e porque não, club culture.

Toda essa idéia foi materializada em 28 containers, aqueles onde os coreanos trazem para o Brasil tecidos, eletro-eletrônicos, roupas e peixes secos. A sacada de arquitetura é a de que os containers são um ícone de um  mundo globalizado, flexíveis para serem desmontados e remontados a qualquer hora, em qualquer lugar.

Cada container expõe o trabalho de um artista, das mais variadas mídias. O contorno configurado por 3 andares de containers que rodeiam o perímetro abre um grande vão no centro do espaço – ideal para as festas que acontecem por lá. Além do terraço que é uma delícia para uma tomar uma cerveja acompanhada de salsichas. E estas já não são coreanas, são alemãs mesmo.





“To question further and deeper on life”

7 12 2009

Kim Soo Ja. Essa mulher é viciante. A cada trabalho dela que estudo fico mais instigada e com vontade de entender mais o seu universo pessoal. É um strip tease fenomenal de sensibilidades e visão de mundo.

Talvez a arte performática não seja das mais digeríveis ao paladar iniciante, é também a mais suspeita e duvidosa; natural, já que as pessoas tendem a rejeitar tudo aquilo com o qual não se sentem confortavelmente familiarizadas.

Outra artista de quem gosto muito, a Janine Antoni, disse uma vez sobre o seu processo de criação quando se trabalha com esculturas: “There is a moment when I am making the object and is like the world has changed. The object starts to make me”.



Acho lindo essa entrega, diálogo e conexão que acontecem entre o criador e a obra. E quando o objeto é o próprio artista, utilizando-se do seu próprio corpo para testemunhar e encapsular a sensação do tema em pauta, acho que o processo todo alcança outro nível.

Além do “A Beggar Woman” e do “A Homeless Woman”, já havia assistido ao vídeo da performance “A Needle Woman”, no qual ela ‘tece’ o fluxo dos pedestres que passam por ela. É  textura humana, a textura de estranhos, de pessoas tão semelhantes como nós e solitárias.

Kim Soo Ja tem praticamente a idade da minha mãe. Fico imaginando que o meu pai, quando se divorciou, deveria ter se casado com uma mulher assim.





So-Mec, So-Mec, So-Mec

4 12 2009

Todos os dias eu sinto a minha alma cansada, como se ela tivesse passado longas horas andando por aí, perdida, longe de mim, enquanto eu estava sentada na minha mesa. Às 19h30min acontece um encontro mágico, lindo. É como se o corpo encontrasse a alma nua e, é nesse reencontro que eu me reconheço.

Esse encontro de corpo e alma acontece num copo de cachaça. Um amigo me diz que a cachaça é a bebida que estabelece as conexões. E que não é à toa que é cachaça a bebida presente nos terreiros onde são realizados trabalhos com o outro lado.

Não sei se a cachaça realmente tem o poder de nos conectar com o lado de lá, mas com certeza ela me conecta a mim mesma.  É conexão de alta velocidade e alta voltagem. Fico com a minha alma só dentro de mim e nenhum outro lugar.

Sempre assumi a minha íntima e empática relação com a embriaguez. Embriaguez, e não necessariamente o álcool. Mas foi na Coréia que reconheci e entendi a familiaridade que sentimos para com as bebidas alcoólicas. Eu já tinha lido isso no MSN de alguém, mas lá vi (e bebi) que realmente – o álcool é o Salonpas das almas coreanas.

A cultura etílica coreana tem características distintas e distantes da brasileira. Enquanto no Brasil apreciamos o processo de embriaguez, na Coréia é exigida agilidade e eficiência para se alcançar a resultante da embriaguez.

Nada de ficarem longas horas papeando e saboreando a bebida, todos os hábitos da cultura etílica coreana visam ficar o mais embriagado possível no menor intervalo de tempo. Vinte e cinco minutos são considerados uma boa distância entre a lucidez e a loucura.

E porque o objetivo é ficar muito louco, pouco importa a qualidade ou o sabor da bebida, desde que seja de eficaz teor. O mais popular é poktan-ju, ‘bomba-atômica’, numa tradução livre. É uma dose de soju mergulhada numa caneca de cerveja e, depois de dar uma batidinha, você toma tudo junto em um único shot. Vale virar a caneca vazia em cima da própria cabeça, como uma finalização elegante, comprovando que você realmente bebeu tudo.

O poktan-ju é também chamado de so-mec, a junção e abreviação das palavras soju e mec-ju (cerveja). Essa é outra mania coreana, o de abreviar as expressões e criar novos verbetes, porque até para falar eles têm pressa. Para ocasiões mais glamourosas, pode-se substituir o soju por uma dose de uísque, e neste caso, o drink tem um upgrade e passa a se chamar Titanic.

Para quem não conhece e não compartilha destes hábitos coreanos, pode soar um exagero de gente embriagada. Mas é a mais pura verdade, é realidade. A evidência disso é o sino alcoólico que encontrei em praticamente todos os restaurantes coreanos. Já falei de sinos, mas este, é realmente o mais fiel retrato do sino que toca atualmente a cultura coreana.

É um bip embutido em cada uma das mesas com 3 botões (os coreanos possuem profunda obsessão com o número 3, conto depois): chamar (a garçonete), soju e mec-ju. Não tive palavras, fiquei completamente emocionada, comovida pelo senso de realismo desse sino. É isso, somos assumidamente assim e pronto. Eficientes até para ordenar mais bebidas, sem perder tempo. Não vamos enrolar a pobre da garçonete, tanto ela quanto nós sabemos muito bem a que viemos.

Esse sino contemporâneo sim, não me deixou apenas com os olhos cheios d’água – depois de sentir e colocar para dentro de mim os 3 toques seguidos “so-mec; so-mec; so-mec”, eu chorei de emoção. Como uma legítima coreana.





O Sino Coreano

3 12 2009

Civilização, cultura e religião são três elementos que possuem uma relação de dependência íntima nas histórias da humanidade. O entendimento e a compreensão de princípios religiosos são imprescindíveis para a assimilação de uma determinada cultura.

Do mesmo modo que o cristianismo exerce um papel fundamental na cultura ocidental, o budismo é base de toda configuração cultural no oriente. Dos códigos sociais de ética e moral aos detalhes estéticos da arquitetura, você só conhece a Coréia de verdade depois de visitar vários templos budistas.

Dentre todos os templos visitados, o mais impressionante é sem dúvida o Bulguksa, localizado em Gyeongsang. Este templo contém nada menos que sete tesouros nacionais e foi considerado pela UNESCO um patrimônio da humanidade.

Há uma infinidade de elementos que podem ser estudados com base nas características presentes num templo budista. Mas para mim, muita coisa fez sentido e ouvi um click profundo quando vi o sino.

Assim como as igrejas européias têm sinos no alto de suas torres, os templos budistas possuem sinos gigantes. A principal diferença na construção desses sinos é o mecanismo de produção de som – enquanto os sinos ocidentais são dotados de badalo na sua parte interna, os sinos orientais são acompanhados de martelos externos.

O som de sino badalado é emitido de dentro para fora, mas o de um sino martelado, ao contrário. Para potencializar ainda mais a martelada, logo abaixo do sino é cavado um buraco na exata medida da circunferência do sino. Os sons emitidos são naturalmente diferentes, assim como a sua vibração e sensações provocadas.

Ao ouvir o sino, compreendi um pouco da filosofia oriental ali depositada para que seja emanada cada vez que ele tocar. O comportamento introvertido, a orientação à reflexão, o questionamento e a busca por respostas dentro de si. Fiquei com os olhos cheios d’água ao perceber a beleza daquele minimalismo silencioso. Puramente oriental. É um som profundo, nada extravagante, mas que fica vibrando dentro de você por dias. Ainda o sinto aqui dentro de mim.